회비 지로통지서 위헌소송
지자체에 자료 제공 요청 합법
법익의 균형성 갖춰
동의한 적이 전혀 없는데 매년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사)의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받은 가구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황당한 세대주들은 모여서 위헌 소송을 냈는데, 얼마 전 잘못된 게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다.
지난 3일, 헌법재판소는 매년 적십자사가 집마다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보낼 수 있게 한 현행 법규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앞서 일부 세대주들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국가나 지자체가 적십자사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위헌”이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법률로 정해야 할 내용들이 시행령으로 돼 있고, 법률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동의 없이 많은 정보가 전달되는 것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위헌확인 소송을 걸었다고 한다.
동의한 적 없는데 지로통지서는 왜 받게 된 걸까? 현행 적십자법 시행령에 따르면 적십자사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회원 모집과 회비 모금, 기부금 영수증 발급에 필요한 자료 제공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행정안전부는 전국 만 25∼74세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적십자사에 넘겨준다. 지난 2019년 기준 1,766만여 건이 제공됐고, 적십자사는 이 정보를 가지고 지로통지서를 발송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해당 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법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는 것. 우리나라가 제네바협약에 가입해 있어 적십자사 활동을 지원할 의무가 있고, 적십자사가 정부의 인도적 활동을 보조하거나 남북교류사업과 혈액사업 등을 수행한 것을 고려했을 때 정당하다고 한다.
아울러 헌재는 적십자사에 제공하는 정보의 목적·범위가 한정돼 있다며, 세대주의 이름·주소가 다른 개인정보와 결합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엄격한 보호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적십자법의 자료 제공 조항과 시행령 조항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법익의 균형성도 갖췄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꼭 내야 하는 세금처럼 지로용지로 보내서 헷갈리게 한 적십자사에 어느 정도 잘못은 있는 것 같다”, “강제적으로 납부하지 말고 자발적으로 내도록 홍보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그래도 사전에 대대로 홍보하지 않고 법이 그러니 위헌이 아니라는 건 억지 부리기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적십자사는 매년 12월이면 1만 원 납부를 요청하는 지로통지서를 배부한다. 의무 납부인 줄 알고 내는 사례가 있을 뿐 아니라 안 내면 재차 날아오는 터라 불편하단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