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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들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배우자의 작은 행실, 배려 하나로 결혼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들이 많죠. 한때 영부인의 자리에 있었던 이 여성은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잘생겼잖아요” 한마디로 일단락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그녀는 결국 영부인의 자리까지 올랐죠. 요즘과 달리 엄혹했던 시절, 가슴 뜨거운 사랑을 했던 주인공은 바로 전 대통령 故 김대중과 그의 부인 故 이희호 여사입니다. 


김대중평화센터

6.25 전쟁 중 처음 만나 
2살 연상, 똑 부러졌던 이희호

이들의 첫 만남은 1951년, 6.25전쟁의 피란지였던 부산에서 이뤄졌습니다. 이 여사는 ‘대한 여자 청년단’의 간부였고 피난민들을 배로 후송하는 일을 담당했는데요. 그 배의 사장님이 바로 김 전 대통령이었죠. 간부들과의 만남에서 둘은 첫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서울 지역 대학생 모임, ‘면우회’를 통해 이어가며 한 달에 한두 번씩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죠. 둘은 당시 서로의 첫인상을 ‘활달하고 이지적인 여성’, ‘아는 것이 참 많은 멋쟁이’라고 회상했습니다. 

한겨레, 김대중평화센터

이 여사는 이화여자전문학교,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였습니다. 당시 여성들의 교육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었을 뿐 아니라 사회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요. 실제로 적극적인 여성 운동을 펼치며 대한 여자 청년단을 비롯해 여성의 권리를 찾는 일에 앞장섰죠. 김 전 대통령은 본인보다 2살 연상이었던 그녀와의 대화는 성숙했고, 오히려 자신이 주눅이 들 때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호감이 가득했던 둘의 인연은 1954년, 이 여사의 미국 유학으로 잠시 멈추게 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희호, 여성운동가로 승승장구
인생의 암흑기 닥쳐온 김대중

이 여사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고 1960년, 5.16 군사 쿠데타와 함께 둘은 재회했습니다. 이 여사는 YMCA 연합회 총무,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이사직 등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엘리트 코스와 함께 본인이 가고자 했던 길을 잘 가고 있던 이 여사에겐 승승장구의 시기였지만 그녀와 달리 김 전 대통령은 암울한 시기였는데요. 

김대중평화센터, 경인일보

당시 정권의 압력을 받으며 연이어 낙선했고, 가세는 더욱 기울어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함께 힘든 생활을 버텨냈던 부인까지 세상을 떠나며 그의 상황은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죠. 그런 김 전 대통령의 머리를 문득 스쳐 지나간 인물이 바로 이 여사였습니다. 본인의 상황과 고민을 토로하며 그녀와의 대화가 이어졌는데요. 달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닌 당시 정치, 정국에 대한 토론이 일상이었던 그들은 몇 년 만의 재회한 게 무색하게 너무나 잘 통했죠. 초반엔 사랑의 감정보다 ‘동지’의 느낌이 강했다고 해요. 

김대중 평화센터

2번째 부인으로 결혼
이희호 주변인,  모두 말려

둘의 대화는 지속됐고, 그 빈도는 점점 잦아졌습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마음이 커졌고 다시 만난 지 2년이 지난 1962년, 둘은 식을 올렸죠. 당시 이 여사의 지인들은 “너무 아깝다”라는 반응들이 많았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경제적 능력도 여유롭지 않았고 자녀가 둘이나 딸린 ‘돌싱’이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혼을 승낙했고 함께 경제적 어려움, 이후 김대중의 투옥까지 함께 버텨냅니다. 결혼에 대한 이유를 묻자 “잘생겼잖아요”라고 센스 있게 답해 훗날 화제가 되기도 했죠. 

김대중평화센터

남편 수감생활 묵묵히 버텨
영부인 되자 여성 운동 재개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는 못했습니다. 이 여사는 당시 정권의 압력을 받고 수감 생활까지 버텨야 했던 김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키며 ‘내조의 여왕’으로 변신했죠. 차입하는 속옷까지 정성스레 다렸고, 김 전 대통령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성했습니다. 기나긴 옥바라지와 내조를 버텨낸 끝에 1997년, 남편은 4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녀 역시 영부인이 되었죠.

한겨레

김 전 대통령에게 가장 가까운 비판자이자 조언자였던 그녀는 남편의 뒷바라지로 잠시 멈췄던 여성 운동을 재개합니다. 김 전 대통령 역시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며 역대 대통령 중 퇴임하는 해 지지율이 30%가 넘는 대통령으로 남았습니다. 함께 정치, 정세에 대해 토론하고 고민한 이 부부는 각자 2009년, 2019년에 세상을 떠났죠. 


kbs news

가장 젊고 찬란했던 시절 만나 한 국가의 대통령, 영부인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 전 대통령 부부. 누구보다 깨어있어 남편을 믿고 묵묵히 도움을 준 부인 이희호 여사와 몇 번의 역경에도 계속해 도전했던 끈기를 보여준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부부는 단순한 생활 속 아내, 남편의 사이에서 더 나아가 서로 의지하는 정치적 동반자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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